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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시오] 때로 다정함은 고통에 의존성을 갖는다.

하루0917 2022. 12. 20. 05:10

카나 유그. 다정하고 정의로운, 이성적이며 이상적인 사람.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인간을 싫어하는 사람. 그래서인지 마치 자신은 그들의 일부가 아닌 양 타자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그는 제법 비인간적인 사람이지 않은가, 하고 시어도어 캠벨은 생각했다.
시어도어의 시선으로 본 그는 뭐랄까,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다만 한겨울의 새벽 햇살 같은, 따스하고도 어딘가 공허한 존재. 외로운 사람이 으레 그렇듯 가슴 속에 공허를 품고 있는 것은 시어도어도 마찬가지였지만, 과할 정도의 인간성을 지닌 시어도어로서는 카나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었다.
카나 유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시어도어가 그의 성을 잘못 읽어 휴그스라 부를 때도 정정하지 않았겠는가. 카나에 대한 것을 물을 때면 그는 항상 말을 돌리거나 입을 맞추어 기어코 시어도어의 입을 닫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래서 시어도어가 아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가령 동물을 좋아하는 점-수의사니까 당연하겠지만-이라던가, 입맛이 고급지다는 것, 몸이 약하고 상처가 많다는 것……. 그런 주변 인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법한 것들만이 시어도어가 카나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도저히 속내를 읽을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그는 늘 미소를 띄고 있었는데, 항상 다정하게 구는 모습은 어딘가 수상하기까지 했다. 시어도어는 그 부분만은 항상 외면해왔다. 그는 카나를 충실하게도 맹신했다. 그의 말이라면 독이라도 삼킬 것처럼. 그러니까…… 시어도어는 카나를 정말, 정말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나를 공허 속에서 이끌어낸 것은 누구인가, 병원 밖의 세계를 만들어 준 것은 누구인가, 잊고 있던 애정을 알게 해준 것은 누구인가. 카나는 그의 빛이며 사랑이었으니, 그 다정함에 종속된 시어도어는 그를 무한히 신뢰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어도어는 저도 모르게 카나를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시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늘 병자의 곁에 있는 시어도어는 고통이 인간의 본성과 꽤나 가깝다고 느꼈다. 한 마디로, 시어도어 캠벨이 카나가 인간임을 자각하는 것은 늘 카나 유그가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볼 때면 생각했다. 저 자도 역시 인간이구나. 그가 인간이라면 적어도 계속 내 곁에 붙잡아둘 수는 있겠다. 그런 이기적인 안도감이 들었다. 시어도어는 잠시나마 카나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었고 병자인 카나는 그를 필요로 했다. 때로 카나가 시어도어에게 의존성을 보이는 것처럼, 시어도어는 카나의 고통에 의존했다.


시어도어가 처음으로 카나에게 동질감을 느낀 것은 카나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였다.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도, 물건도, 장소도 언젠가는 변하고 사라져버리고 추억으로만 남는다. 시어도어가 이십 년간 살아온 집도 마찬가지였다. 지어진 지 수십 년은 더 돼 낡다 못해 꺼림칙하기까지 한 그곳은 재건축을 피할 수 없었다. 당연한 사실은 시어도어에게 꽤나 무겁게 다가왔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산이자 자신이 자라온 장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추억이 무너져 사라지려 하고 있다. 우울감은 현실의 파도와 뒤엉켜 더한 심해로 끌어내린다. 아파트를 다시 지은 뒤에 이곳에 돌아올 수야 있겠지만 그 동안 갈 곳은 없었다. 지낼 곳을 구해 나간다고 해도 그곳을 진정 집이라고 여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시어도어의 삶에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는 이곳뿐이었다.
부모에게 연락하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그랬던 것처럼 캐나다로 돌아오라고 하겠지. 그리고 또 방치당할 테다. 아니면 머리가 컸으니 이제야 사람 취급을 좀 해 주던지. 어느 쪽이든 비참했기에 애초에 선택지도 아니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주어진 시간이 적지는 않았으니 우선 내일을 살기 위해 잠에 들었다.
그리고 정말 바빴다. 수면 시간 따위 고려하지 않은 듯 엉망진창인 근무에 지친 몸을 끌고 돌아와 밥을 먹고, 씻고, 자면 그게 끝이었다.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시어도어가 집을 나가기에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 남짓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카나 유그가 시어도어의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손님을 맞기에 변변찮은 것이 없어 커피나 한잔 내려 식탁에 올려두고 거실에 앉아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시어도어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재건축한답니다. 한 달 안에는 짐을 빼야 하는데, 갈 데가 없어요.
부모는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지만, 카나에게 연락하는 것은 꽤나 고민했었다. 시어도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인 그는 다정하기까지 해서 분명 시어도어를 도와줄 테다. 하지만 수의사인 카나는 시어도어보다도 바쁜 사람이었고, 시어도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괜한 데 신경을 쏟게 만드는 것 같아 연락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 말이 참 쉽게도 나왔다.
카나는 역시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살자고 해 주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자로부터 선뜻 내밀어진 손이 단순한 동정이었을지 사심이었을지는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마당에 굳이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느 쪽이든 시어도어는 그 손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덕분에 시어도어는 드디어 할머니의 방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 마음속 짐을 내려놓기에는 옳은 선택임에는 이견이 없었다.

카나 유그의 집은 시어도어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달랐다. 다 스러져가는 낡아빠진 아파트와 비교하는 것이 무색을 넘어 미안해질 정도로 좋은 환경이었다. 다만 그곳은 시어도어의 집-이었던 곳-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는 했다. 필요한 가구는 갖추고 있었지만 그 외의 잡다한 물건이라고는 무엇 하나 놓여있지 않은, 가구를 판매하기 위해 꾸민 전시장처럼 사용감 없는 인위적인 공간. 그것은 더 이상 기다리는 사람 없는 집으로 돌아가며 매일같이 느낀 공허함과 같은 감각이어서, 시어도어는 순간적으로 카나에게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마침 카나의 집은 혼자 살기에 큰 곳이었기에 남는 방이 있어 시어도어가 그곳을 쓰기로 했지만, 그 날 시어도어는 카나와 함께 잠들었다.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그저 욕망에 불과했을까. 그것조차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연인의 체향에 전부 날아가버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