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로그

늦잠을 자고 있는 너에게.

하루0917 2024. 1. 11. 22:54

막상 네 눈물을 마주하자 손에서 힘이 탁 풀려 붙잡은 옷깃을 놓았다. 너를 걱정한다는 감정을 앞세워 개인적인 감정일 뿐인 울분을 토해낸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무언가 말하고 싶어 입술을 달싹여 보지만 옅은 숨소리만이 겨우 새어나왔다. 마치 끈적한 무언가가 기도를 틀어막고 있는 듯 숨이 막혀와서.

 

"나는…"

 

나는 어쩌고 싶었던 거지? 네게 무슨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말해야 좋을지 머릿속에서 온갖 다정한 말들을 거르고 골라내도 도저히 문장으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나는 그냥 네가 웃으면서 지내기를 바랐을 뿐인데, 네가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랐을 뿐인데, 네 입에서 나온 말들은 하나같이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만일 내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일찍 너와 재회했다면 무언가 바뀌었을까? 펜과 종이라는 벽 뒤에 숨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감추고 아름답게 꾸며낼 수 있는 편지를 부치는 게 아니라, 한번이라도 직접 찾아가 보았더라면….

 

"나는 네가 소중하니까…."

"그러니까 자꾸만 너를 끌어내고 마는 거야…."

 

시간이란 멈출 수 없이 흘러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린 날의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두려워했다. 너는 나의 깨지 않는 꿈이 되겠다고, 나는 너의 영원이 되겠다고,  꿈이라는 좁은 방 안에서 약속을 나눈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꿈이란 존재치 않듯 우리의 꿈도 깨져 버리고 말았다. 에메랄드 빛 쾌청, 칠흑의 밤하늘에 수놓인 은하수 아래서 따듯한 봄바람에 휘날리는 라일락. 영원할 것만 같던 그 풍경에서 벗어났다. 그 좁은 방에만 머물러 있기에 우리는 너무 자라 버렸으니까.

 

"언제까지고 꿈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는 거 알잖아…."

 

네가 말한 삶이라는 것에는 당연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니, 네게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들. 일반적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매번 돈을 빌려가지 않고, 일반적인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신을 위해 폭력적인 순혈주의자들에게 가담하기를 종용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의식을 잃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겨우 눈을 떴을 때는 다시 기쁨의 눈물을 흘려주는 것이, 그것이 일반적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는 네게 당연한 것이 행복이었으면 한다.

너를 끌어안는다. 내가 알던 그 작은 아이를. 자꾸만 사라지는 강아지를 찾아다니고, 퀴디치를 하겠다며 뛰쳐나가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 줄 알던 그 아이를. 너무나 소중해서, 언제까지고 함께하겠다고 맹세한 너를.

 

"네가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며 애쓸 필요 없어. 네 고통이, 네 무력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다정한 목소리로 낮게 읊조린다.

 

"하지만 네가 한 사랑은 진짜였어. 그리고 네가 사랑받았다고 느끼면, 그 시간은 전혀 헛되지 않은 거야."

 

지금의 화자는 그저 너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친구이자, 네가 형처럼 따랐던 그 룸메이트였다.

 

"너는 이제 어른이야. 얼마든지 너를 괴롭게 하는 것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어. 그 말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 함께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 나는 너를 꿈 속에서 끌어내리라. 그런 비좁은 꿈 속이 아닌, 넓은 세상을 향한 문으로 너를 이끄리라. 그리고 네가 문을 열고 나온다면, 네 고통을 전부 함께 끌어안아 주리라고. 그렇게 또 하나의 소망을 만들어 냈다. 그 얼굴에는 어딘가 구슬픈, 희미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어. 네가 허락만 해 준다면, 네가 내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기만 해 주면…."